GREETINGS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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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27일(월) - 연말로 다가갈수록 시간의 흐름이 더욱 빨라지는 듯합니다. 날이 갈수록 나빠지는 미국 경제, 세계 경제의 영향은 캐나다에서도 체감됩니다. 캐나다화의 가치가 몇달새 1달러당 80센트 아래로 떨어졌고, 언론에서는 연일 암울한 소식과 전망을 내놓기 바쁩니다. 문을 닫는 기업이 늘고, 일자리를 잃는 사람이 늘고, 우리 어깨도 더욱 움츠러듭니다. 6%대이던 미국 실업률은 다음달께 8%대까지 치솟을 것이라고 하니, 미국 경제에 잔뜩 의존하고 있는 캐나다의 앞날 또한 밝기 어렵겠습니다. 일개 소비자 입장에서는, 결국 지출을 줄이고, 절약하는 길이 이 경제 위기에 대처하는 최선책일 터입니다. 핼로윈이 며칠 남지 않았는데, 굳이 그 날을 기릴 이유가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이미 하루하루가 그 핼로윈 데이 같으니 말입니다.


2008년 10월13일(월) - 추수감사절 긴 연휴의 끝입니다. 그래도 하루를 더 쉰다는 게 얼마나 뿌듯하고 흐뭇하고 안온한지 모르겠습니다. 아침 일곱 시가 넘어도 사위는 껌껌합니다. 가을이 그만큼 깊었다는 한 증거입니다. 동준이를 써라피 센터에 데려가면서 보이는 능선 너머의 나무들이 가을빛으로 단장해 퍽 아름다웠습니다. 긴 연휴를 이용해 캠핑을 갈 참이었지만 막판에 마음을 바꿨습니다. 집에 콕 박혀, 게으르게 쉬는 쪽으로... 동준엄마의 몸이 불편한 것도 마음을 바꾸게 된 한 이유였습니다. 성준이는 그래도 분주하게 돌아쳤습니다. 피아노도 뚱땅거려 보고, 뒤뜰 잔디밭에서 온갖 소소한 것들을 집어 입에 넣어보고... 집에 박혀 있으면 나들이하지 않은 게 아쉽고, 집 나서고 나면 그냥 집에서 편히 쉴 걸 하는 후회가 드는 게 사람 마음입니다. 시간이 났을 때 그를 살뜰하고 뜻깊게 쓰는 능력이야말로 그 사람의 진짜 깊이와 품질을 가늠하게 하는 한 잣대가 아닐까 합니다. 캐나다와 미국 양쪽에서 선거 열기가 한창입니다. 캐나다 선거일은 내일이고, 미국 선거는 아직 한 달 정도 남았습니다. 후보자의 외모, 제스처, 몇 마디 말, 그에 대한 언론의 지나친 호들갑 따위가, 그 후보자들의 진짜 경영 능력이나 비전, 정책 대안에 대한 냉철한 평가와 비교를 완전히 가려버리고, 대세와는 전혀 무관한 허접한 이슈에 이리저리 감정적으로 휘둘리는 이른바 유권자들의 행태를 목도하면서, 과연 민주주의가 이 시대와 사회에 맞는 최선책인가, 자꾸만 의심하게 됩니다. 내일 꼭 선거를 할겁니다.


2008년 10월06일(월) - 시각을 바꾸면 보이는 것도 다릅니다. 어떤 각도에서 바라보는가,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평가하는가에 따라, 그 결과물도 사뭇 다릅니다. 그 평범한 상식을, 최근에 출간된 책 'The Atlas of the Real World - Mapping the Way we Live"만큼 시각적으로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도 달리 없었던 듯합니다. 우리가 흔히 보는, 대륙의 상대적 크기에 맞춰 배열한 지도와 달리, 여기에 소개되는 지도들은 각기 다른 잣대들에 기대어 생산한 것들입니다. 이를테면 알코올 소비량, 핵무기 보유량, 집값, 항공 여행량, 에이즈균 보균자수, 일산화탄소 발생량 같은 것들입니다. 한국과 관련해서 눈에 띄는 것은 기차 여행 빈도를 기준으로 한 지도와, 2015년의 예상 국부를 잣대로 삼은 예상 지도입니다. 한국의 실제 땅 크기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막대한 규모로 나와 있습니다.


2008년 9월28일(일)- 집을 나설 무렵이면 사위가 깜깜합니다. 9월이 다 갔습니다. 주일이면 주말을 기다리는 설렘으로, 주말이면 미처 그 맛을 제대로 즐기기도 전에 금-토-일요일이 어느새 다 지나가버렸다는 조바심으로,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미국 경제가 점점 더 가파른 하강 곡선 -이라기보다는 직선-을 그리면서, 이곳 캐나다에도 심리적 위기감이 점점 깊어집니다. 가을도 깊어지고, 시름도 깊어지고... 그러나 어떻게 흘러가든 그것이 곧 세상의 끝이라거나, 혹은 이 시련만 현명하게 극복하고 나면 찬란한 번영의 새로운 시작이 기다리고 있다라는 - 엊그제 한국의 한 신문에서 그 비슷한 제목을 보고 참 기가 막혔습니다 - 따위의 유치한, 진단 아닌 진단은 다시 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기자들 공부 안하고 게으르고 무식하다는 이야기가, 아직도 일정 부분 시의성을 지니고 있다는 새삼스러운 깨달음에 마음 한 구석이 착잡합니다. 차분하고 꼼꼼하고 객관적으로 세상을 보는 일이, 점점 더 보기 드문 미덕처럼 되어 가는 요즘입니다.


2008년 9월15일(월) - 어제가 추석이었습니다. 이민 온 이후 늘 그랬듯이, 그러나 그 추석은 추석 같지 않게 지나갔습니다. 캐나다의 추석은 다음달 중순이고, 미국 추석은 다시 그로부터 한 달 뒤입니다. 한국에 살 때라고 추석을 특별히 보낸 것은 아니었으나, 심상하게 보내고 보니 마음 한 구석에 아쉬움이 살짝 쌓이는 것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어렸을 때, 송편 찔 때 넣을 솔잎을 주으러 뒷산에 올랐던 기억, 그 산 너머로 둥실 떠오른 보름달을 보면서 소원을 빌었던 기억이 잠깐 떠올랐습니다. 추석전날, 한국에서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늘 보고 싶은 친구로부터 온 전화였습니다. 어디 술자리에서 건 듯했는데, 그 친구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참 한국이 그리웠습니다. 그 술자리에 나도 앉아서, 사소하고 시시한 이야기를 오래도록 늘어놓고 싶었습니다.그래도 토요일 미시사가에서 오랜만에 캐나다로 날아온 친척과 저녁 함께한 것, 그리고 추석날 저녁 친한 이웃과 푸짐한 저녁 함께한 것으로 그 아쉬움은 충분히 보상받았습니다. 캐나다는 아침저녁으로 서늘합니다. 낮에는 여름 기운이 아직 등등하지만 가을이 성큼 다가온 것은 분명합니다. 곧 아름다운 단풍의 계절이 펼쳐질 참입니다.


2008년 9월8일(월) - 듣고 듣고 또 듣고. 성준이 덕택에, 어린이 프로그램을 푸짐하게 듣고, 또 보고 있습니다. 위글스 (이글스가 아닙니다), 요 가바가바, 포코요, In the night garden, 4 Square 등 이 대표적인데, 특히 위글스에 대한 엄마의 지식은 가히 백과사전적이어서, 거기에 나오는 4 위글 멤버의 신상명세는 물론, 해적선장 깃털씨 (페더소드), 공룡 도로시, 멍멍이 왝, 오징어 헨리 등에 대한 '개인정보'까지 꿰고 있답니다. 요즘 성준이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보노라면 '엽기'라는 말이 저절로 떠오를 만큼 과거와는 다른 파격이 느껴집니다. 특히 요 가바가바, In the night garden, 4 Square 등이 그렇습니다. 잘은 모르지만 어린 아이들의 심리와 행동 양식을 연구한 끝에 내놓은 작품이려니 짐작합니다. 요 가바가바에는 반지의 제왕에서 프로도를 연기한 일라이자 우드도 나와 멋진 춤을 선보입니다. 한 번 유튜브에서 구경하세요. 성준이용 프로그램을 보면서 나도 나이를 먹었구나 - 허걱! - 새삼 실감합니다.


2008년9월2일 (화) - 노동절긴 주말을 이용해 사일런트 레이크 주립공원에 다녀왔습니다. 이름 그대로 고적하고 평화롭고 작은 공원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약간 늦게 예약하는 바람에 전기 사이트를 잡지 못해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조명이 시원치 않았습니다. 정신을 어디에다 팔았는지 그 흔한 양초 하나 가져가지 않은 탓에 모닥불에 기댈 수밖에 없었는데, 그마저도 제대로 타주지 않아 곤욕을 치렀습니다.

또 하나 이번 캠핑에서 느낀 것은, 저희가 너무 무모했다는 점이었습니다. 성준이와 동준이 둘을 데리고 캠핑 다니기가 얼마나 버거운 일인지, 이번에 새삼 깨달았습니다. 틈만 나면 땅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무엇이든 입에 집어넣는 성준이 쫓아다니는 일 하나만도 여간만한 노동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합의한 것: 적어도 성준이가 제 앞가림 할 때까지는 캠핑은 무기한 보류한다.

그래도 사일런트 레이크는 참 아름다웠습니다. 풍요로운 그늘을 지운 단풍나무 숲, 호숫가를 따라 호젓하게 난 트레일, 아담하게 마련된 호변의 수영 지역... 그러나 때로는, 노는 데도 가외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이곳에서는 흔히 노동절 주말의 끝을 여름의 끝, 혹은 가을의 시작으로 칩니다. 지난 주말, 무르익어가는 가을이 눈부셨습니다.


2008년8월24일 (일) - 죽었던 컴퓨터가 살아났습니다. 지난 8월11일 산 지 몇개월밖에 안된 맥북 노트북이 녹차 한 컵을 듬뿍 들이마시고 비명횡사했다고 했는데, 2주쯤 지난 오늘 다시 전원을 연결하고 켜보니 다시 쌩~ 하고 살아난 것이었습니다. 죽었다고 진단한 주인만 바보가 된 꼴인데, 아무려나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아직 마시지도 않은 녹차를 노트북 옆에 뒀다 폭삭 엎은 뒤, 곧바로 배터리를 포함한 노트북 전원을 빼고 제발 별탈없이 말라라, 라고 조처했던 게, 결과적으로는 주효한 모양입니다. 다만 배터리는 그 때 완전히 맛이 간 게 분명합니다. 그래도 그 정도 피해로 그친 게 실로 '불행중 다행'이라 하겠습니다.

8월도 한 주 남았습니다. 그간 서늘하던 여름 날씨가, 토론토 사람들의 원성에 화답이라도 하듯 뒤늦은 불볕 더위를 선사하고 있습니다. 8월이 가고 나면 곧 가을. 시간이 잘도 갑니다.


2008년8월17일 (일) - 아내의 눈총을 무릅쓰고, 앞으로 한 2년 생일선물은 포기한다는 허언까지 날리면서, 생애 처음으로 전자책을 장만했습니다. 업무상 읽어야 할 서류나 보고서가 많은데 전자문서 형태가 점점 더 많아져 모니터로 읽는 데도 한계가 있고 그렇다고 일일이 종이로 인쇄하기도 번거롭다, 라는 핑계도 물론 한몫 했습니다. 실제로 여러 컨퍼런스와 부처간 회의에서 구한 전자문서만 1GB (종이책으로 친다면 1천권쯤 되겠습니다)에 이르니 영 허튼 소리만은 아닙니다만... 그렇게 해서 구한 것이 '소니 포터블 디지털 리더 시스템PRS-505'라는 밋밋하고 따분한 이름의 전자문서 리더기입니다. 아마존닷컴이 자사의 방대한 온라인 서점 데이터베이스에다 스프린트의 무선 서비스를 연계해 만든 '킨들' (Kindle)이 더 탐났으나 오직 미국에서밖에 팔지 않고, 설령 구한다고 해서 미국 밖으로 나가서는 쓸 수 없는 저간의 사정 때문에, 차선으로 고른 것이 이 소니 505였습니다. 이들은 각자 다른 문서 형식을 고집하고 있지만 디스플레이 기술은 똑같은 'E-잉크'입니다. 말로만 듣고, 유튜브로만 보다가 직접 손에 잡고 써본 소니 리더기는 한 마디로 '환상적'입니다. 이제 진짜 독서의 문법이 바뀔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700쪽짜리 범죄소설을 한 230쪽째 읽고 있는데, 불편한 줄 모르겠습니다. 책 수십, 수백 권 분량을 매스페이퍼백 크기에 두께는 0.5cm정도밖에 안하는 기기에 넣어가지고 다니면서 읽는 그 맛이, 정말 여간 달콤하지 않습니다. 종이책을 읽는 그 맛의 100%를 기대할 수야 있겠습니까만, 적어도 7, 80%는 될 듯합니다. 출근하기 직전 글로브앤메일, 토론토스타 같은 일간지의 기사를 받아다 통근 전철 안에서 읽는 재미 또한 빼놓을 수 없습니다. 신기술이란 이래서 좋은 것이구나, 새삼 실감하는 요즘입니다.


2008811 () - 그 동안 일이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새로 산 애플 맥북 컴퓨터가 죽음의 녹차 세례를 듬뿍 받고 요절했습니다 (앞으로 얼마 뒤에나 수리점에 갈지 미지수입니다. 그렇게 '익사'한 컴퓨터는 보통 마더보드를 통째로 갈아야 하고 따라서 '차라리 새 노트북을 사는 게 낫겠다' 싶은 수준의 수리비를 요구하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구입한 지 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살아 있는 애플 파워북 G4옹()이 다시 바빠졌습니다. 하드디스크를 40GB에서 120GB짜리로 바꿨고, 그 전에 두 차례나 메모리를 늘렸으며, 하드디스크 에러로 두어 번 '병원'엘 드나들었으니 그도 싼 컴퓨터라고 하지는 못하겠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와 이번 주말에는 마스터 베드룸에 깔려 있던 카펫을 걷어내고 그 밑에 있는 나무바닥을 부드럽게 갈아내는 작업을 벌였습니다 (아내가 적극 나서서 일을 벌였고 저는 그저 수수방관...). 홈디포에서 샌더를 빌려다 바닥을 갈았는데, 그 샌더가 여간 무겁고 다루기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빌린 김에 다른 방 하나까지 손을 대고 보니 졸지에 방 두 개를 한 열흘쯤 쓸 수 없게 됐고, 그 바람에 성준이와 저는 동준이 방에서, 동준이와 엄마는 1층 거실에서 피난민 생활을 하게 됐습니다.


2008년8월3일 (일) - 눈을 뜨니 낮 11시가 넘었습니다. 그간 쌓인 여독이 만만치 않았던 게 분명합니다. 지난 7월25일 밴쿠버로 건너가, 27일부터 31일까지 4박5일간 로키산맥의 한 자락을 구경하고 왔습니다. 써리 (Surrey) - 새먼 암 (Salmon Arm) - 레벨스토크 (Revelstoke) - 밴프 (Banff) - 캔모어 (Canmore) - 컬로우나 (Kelowna)를 거쳐 다시 써리(밴쿠버)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더욱이 여행을 떠나기 전날에는 성준이가 갑자기 고열에 시달려 근처 병원 응급실에서 몇시간을 보내며 노심초사하기도 했습니다. 여행은 총 2천5백km에 이르는 장정이었습니다. 사방을 마치 병풍처럼 두른 장대한 로키 산맥의 위용이 가는 길마다 실로 압도적 장관으로 다가왔습니다. 가문비 나무, 전나무, 포플라, 삼나무, 소나무 같은 수목이 빼곡히 늘어서 연출하는 방대한 아한대 산림대도 서늘한 인상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렇게 빼곡한 숲도 가파른 산맥의 4, 5부 능선을 넘어서면서부터는 거대하고 편평한 암반들에 자리를 내주어, 로키 산맥의 막대한 규모를 시위하는 한편, 그 지역이 나무들의 생육에 우호적이지 않은 아한대 지역임을 실감케 했습니다. 한여름에도 녹지 않고 산자락의 3분의 1 이상을 차디찬 얼음으로 뒤덮은 컬럼비아 빙원, 파란 호수에 석회질이 섞여들어 엷은 청록색을 띈 보우 (Bow) 호수, 10분쯤 걸어 올라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여우 형상의 페이토 (Peyto) 호수, 이름 그대로 에머럴드 빛이 선명했던 에머럴드 호수 등도 진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대단한 산맥의 장관도, 거침없이 진척되는 개발, 개발 붐에는 한 수 밀리는 듯했습니다. 리조트, 콘도, 럭셔리 호텔, 골프 코스... '모든 인공적인 것을 압도하는 산맥의 장관'이라는 표현은 이제 시효 지난 투어가이드에서나 통용될 것처럼 보였습니다. 산맥 곳곳에 기댄, 겉보기에 동화속 풍경처럼 아름다운 마을들도, 다만 관광객의 주머니를 노리고 치밀하게 계산해 설계한, 그래서 인간미나 정겨움은 느낄 수 없는 공허한 건조물 같았습니다. 말 그대로 '관광'은 좋았으나, 그를 둘러싸고 날로 정교해지고 치밀해지고 효율화하는 상업주의는 쓴 입맛을 남겼습니다


2008년 7월21일 ()- 주말에 미국 버팔로에 다녀왔습니다. 일종의 쇼핑 여행이어서 토요일 당일치기로 끝냈습니다. 문제는 거기에 동준이와 성준이까지 바리바리 끌고 간 것이었습니다. 날은 33도까지 치솟는 찜통더위였고, 내려가는 길은 세관 근처에서 정체, 게다가 돌아오는 길에 들른 레스토랑에서 동준이가 예의 대성통곡을 그치지 않는 바람에 음식이 입으로 들어갔는지 코로 들어갔는지도 몰랐습니다. 당일치기였는데도 집에 돌아오자마자 그냥 퍼져버렸습니다. 정말 피곤했습니다. ‘집 나서면 고생이라는 말, 실로 명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는 주말 밴쿠버로 날아가는데, 이번 버팔로행보다는 좀 더 수월하고 즐거운 여행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08 715 ()- 아직 7월인데 아침 저녁으론 선선합니다. 아직 8월이 남았는데 벌써 가을이 오는 것은 아닐테고, 어쨌든 지내기에는 쾌적해서 좋습니다. 동준이는 물놀이를 더 하고 싶어 난리인데 뒤뜰에는 올여름 들어 더욱 기승인 모기와, 뜻하지 않은 '포이즌 아이비' 불청객 때문에 선뜻 내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몇주전 뽑아냈는데, 아무래도 뿌리가 남아 있었던 모양입니다. 성준이는 형이 하는 것이면뭐든 따라하려 뒤뚱뒤뚱 뛰어다니고, 형이 갖고 노는 것은 다 제가 빼앗아야 직성이 풀려서, 성준이는 앙앙, 동준이는 ‘바바이, 바바이!” 하며 둘이 티격태격하기 일쑤입니다. 그래도 동준이가 착해서 동생을 해코지할 생각은 못하고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난감해 할 따름입니다. 아빠는 애들이랑 좀더 놀아줘야 하는데, 별로 일을 세게 하는 것도 아니면서 집에만 돌아오면 파김치가 돼서 그냥 널부러지기 일쑤입니다. 이래서는 안되는데…그러면서 하루 하루가 흘러갑니다.


2008년7월6일 (일)- 일요일이 다 가는 소리, 아쉬움이 쌓이는 소리...문득 옛 노랫말 한자락이 연상되는 시각입니다. 해는 서쪽으로 기울고, 꿀맛 같은 주말도 지나갑니다. 재능 많은 코미디 배우 스티브 카렐이 주연한 영화 'Dan in Real Life'를 재미있게 본 기억, 로저 페더러와 라파엘 나달이 4시간 넘게 명승부를 펼친 윔블던 결승의 기억도 함께 멀어집니다. 시간은 참 상대적이라는 것을 새삼 실감하면서, 다음 한 주를 어떻게 해야 잘 보낼 수 있을까 자문해 봅니다. 이민 오면서 세운 목표 하나는 '스트레스 받지 말고 살자'라는 것이었는데, 아무래도 실현 가능성과는 거리가 먼 목표였다고 자인하게 됩니다. 동문회며 향우회며 교회/성당이며 아무데도 줄을 대지 않다 보니 '심심하게 살고 싶다'라는 바람 하나는 그래도 제법 이룬 듯한데, 너무 심심해진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이따금씩 들곤 합니다. 또 한 주가 열리고 있습니다.


2008년7월1일 (화) - 지난 사흘간 (6월28일~30일), 오랜만에 노던 온타리오의 풍치를 즐기고 왔습니다. 일기가 다소 고르지 못했지만 간간이 햇빛이 비쳐 생각만큼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3년전 약 10개월 동안, 2주마다 거의 빠지지 않고 오르내렸던 그 길을 고스란히 다시 밟는 감회가 실로 남달랐습니다. 토론토 - 수 세인트 마리 - 와와 - 서드버리, 그리고 다시 토론토로 이르는 그 길은, 짧았지만 퍽이나 다사다난했던 옛 기억을 되살려주었습니다. 한 가지 표나게 다른 것은 '참 멀다'라는 자각이었습니다. 신기하게도, 당시에는 편도로만 1천km 가까운 먼 길이 이번 여행에서만큼 가망없이 멀게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멀었습니다. 아침에 출발해 저녁 무렵까지 하염없이 운전해야 겨우 닿을 수 있었던 와와, 혹은 토론토가 만만한 목적지일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때는 그게 당연히 해야만 할 일처럼 여겨졌고, 아마도 그래서 힘들다는 감각 또한 다소 무뎌졌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던 온타리오는 서던 온타리오에 비해 훨씬 더 가파른 속도로 삶의 질이 떨어진 게 분명했습니다. 와와의 최대 고용주인 목재회사 웨이어하우저가 문을 닫았고, 이웃 동네 화이트리버의 돔타, 드브륄빌의 뷰캐넌도 역시 폐업했습니다. 임업에 대한 의존도가 유독 높은 이들 산촌에서는 그야말로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일이었습니다. 날로 쇠퇴해가는 노던 온타리오는 십수년 전 속수무책으로 몰락의 길을 걸었던 한국의 농촌을 떠올렸습니다.


2008년 6월23일 (월) -야후 사전을 찾아보니 '(유럽산(産)) 붉은가슴울새'라고 돼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흔히 '로빈'(Robin)이라고 부르는 새입니다. 이름 그대로 가슴께가 붉습니다. 참 예쁘게 생긴, 주택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새입니다. 이 새가 저희 집 2층 화장실 창문 곁에다 둥지를 틀었더군요. 전혀 모르고 있다가 우연히 화장실의 작은 창문을 열고 알았습니다. 퍼뜩 놀란 어미가 후루룩 날아간 둥지에, 파란 알 네 개가 참 안쓰럽고 사랑스럽게 놓여 있었습니다. 몇주 전에는 '모닝 더브'(Mourning dove; (구슬픈 소리로 우는) 산비둘기의 일종(북미·중미산(産))이라고 사전에 풀이돼 있습니다)가 집앞 우체통 위에 둥지를 잠시 틀었다가 떠난 적이 있는데, 아무래도 집 위치가 새들에게 둥지 틀기 편해 보이는 모양입니다. 이른 아침부터 울어대는 새 소리가 참 듣기 좋습니다. 이 좋은 계절 여름도, 하지를 지나면서 가을로 향해갑니다.


2008년 6월17일 (화) - 어제부터 노타와사가 인(Nottawasaga Inn)에 머물고 있습니다. 토론토에서 북서쪽으로 80km쯤 떨어진 앨리스턴(Alliston)이라는 동네에 있는 리조트입니다. 앨리스턴은 혼다 자동차 공장이 있는 곳으로만 알려진 동네이고, 노타와사가 인은 토론토에서 그리 멀지 않으면서도 꽤 좋은 품질의 골프 코스와, 그에 딸린 은퇴자들을 겨냥한 주택 단지로 유명한 리조트입니다. 이곳에 온 것은 제가 다니는 직장의 1박2일 단합대회 ('Retreat'라고 표현합니다) 때문입니다. 실제 행사는 오늘부터지만 행사 준비를 거들겠다고 자원해서, 행사에 쓸 여러 물품을 카고 밴에 싣고 하루 일찍 올라왔습니다. 이런 그럴듯한 곳에 혼자 오고 나면 늘 생각나는 것이 가족입니다. 특히 어제 집을 나서는데 성준이가 아빠한테 안기겠다고 앙앙 울어서 더욱 그렇습니다. 아내랑 애들을 이곳에 데려와서 함께 거닐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늘 머릿속에 맴돕니다. 어제 저녁 근처 트레일을 걸었는데, 각양각색의 나무들과, 그 사이사이로 보이는 잘 가꾼 골프 코스의 풍경이 제법 그럴듯했습니다.


2008년 6월9일 (월) - 어제 평소 가깝게 지내는 이웃을 초대해 점심을 들었습니다. 이웃이라고 해야 비슷한 때 캐나다로 건너오신 옛 직장 선배네, 그리고 대학때 수업을 함께 들었던 선배네가 고작입니다. 그 점심은 성준이 돌을 기념한 것이었습니다. 성선배네가 예쁘고 앙증맞은 돌 케익까지 사오셔서, 그 자리가 더욱 뜻깊었습니다. 가족과 친지가 거의 없는 캐나다에 살면서 가장 아쉬운 것은, 가정의 대소사를 함께 맞을 사람이 없다는 점입니다. 한국에 잠깐 다녀올까도 생각했지만 도무지 재정 형편이 그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정성이 중요하다, 라고 속으로 위안합니다. 그러고 보니, 그래도 잊지 않고 전화해 주고 축하해 주는 가족, 친구 들이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이번 주중에는 온 가족이 사진관에 가서 기념 사진이나 찍을 생각입니다.


2008년 6월6일 (금) - 수은주가 30도를 넘었습니다. 프레드릭턴에서 돌아오고 나니 하룻만에 계절이 늦봄에서 한여름으로 탈바꿈한 듯합니다. 밖은 푹푹 찝니다. '덥다'라는 감각은 실상 수은주보다 습도로부터 더 직접적으로 연유할텐데, 이곳 토론토의 여름은 그래서 후텁지근하기로 악명 높습니다. 이번 주말 꽤나 무더운 여름이 이어질 모양입니다. 금요일 오후, 이제 한 시간여만 더 있으면 퇴근입니다. 일주일중 가장 행복하고 나른한 때. 특별한 계획이 있든 없든, 금요일 오후는 늘 설렙니다.


2008년 6월3일 (화) - 아직 프레데릭턴입니다. 도시가 참 아담하고 예쁩니다. 캐나다로 이민 올 무렵 살고 싶어한, 머릿속으로그려본 도시와 흡사합니다. 하지만어느 도시인들 완벽하겠습니까? 서울은 서울대로, 토론토는 토론토대로, 또 프레데릭턴은 프레데릭턴대로 좋은 점과 그렇지 못한 점이 뒤섞여 공존하겠지요. 이곳에서 느끼는 불편중 하나는 아무래도 음식을 포함한 한국 물산을 구하기 어렵다는 점이겠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고 놀랍게도 채 인구 1만이 못되는, 프레데릭턴보다도 훨씬 더 작은 마을 – 그래서 명칭도 '씨티'가 아니라 '타운'입니다 – '서섹스'(Sussex)라는 곳에서, 그것도 따로 나와 있는 레스토랑이 아닌 한 모텔에 딸린 식당에서, 이른바 “Korean Famous Dish”를 먹지 않았겠습니까! 음식 맛까지 1급이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래도 먹을 만했습니다. 하 참 신기하다, 라는 생각이 음식맛을 북돋운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참, 서섹스는 '캐나다 벽화의 수도'임을 자처하는 동네입니다. 멋진 벽화가 많습니다. 일일이 다 구경하고 사진도 찍고 싶었는데, 그럴 시간이, 이번에도 좀 부족했습니다.


2008년 6월2일 (월) -지금 뉴브룬스윅의 주도인 프레데릭턴에 와 있습니다. 작고 아담하고 깔끔하고 예쁜 도시입니다. 이곳저곳 돌아보면서 몇년 전 다녀본 온타리오 북부의 작은 도시들이 떠올랐습니다. 피터보로, 수세인트마리, 티민스, 서드버리, 썬더베이 같은 동네들. 결국 인구 10만 안팎인 도시들은 다 엇비슷한 모양과 구성과 양상을 띠게 되는 모양입니다. 세인트 존 강을 사이에 끼고 발달한 모양은 세인트 로렌스 강을 끌어안고 있는 퀘벡시와 흡사한데, 그 강 폭이 더 좁고 깊이가 더 얕고 흐름이 더 느려서 보는 이들에게 좀더 친근한 맛을 주는 점이 달라 보입니다. 그래서 그 강을 따라 트레일이 아주 잘 발달해 있고, 많은 이들이 그를 적극 활용한다는 점도 차이인 것 같습니다. 물론 인적이 다소 뜸한 것도 다른 점이겠습니다.

첫날 날아와서, 뜻하지 않게 '아시아 문화의 밤' 행사를 구경했습니다. 인구에 견주면 퍽이나 다양한 인종과 문화를 자랑하는 프레데릭턴 다운 이벤트였습니다. 일본 중국 필리핀 인도 한국 등의 이민자 그룹이 간단한 전시회도 열고 제 나름의 문화 공연도 펼쳤는데, 다들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공연들의 객관적 수준은 논외로 치고, 공연을 펼치는 그 아마추어들의 열정과 정성이 여간 아니었습니다. 몇몇 공연은, 몸에 소름이 끼칠 만큼 깊은 인상을 안겼습니다. 한국 공연만 빼고요. 한국 팀의 공연은 '공연'이라는 표현조차 쓰기 민망할 만큼 수준 이하였습니다.  색동옷 차림의 어린아이들을 횡대로 세워놓고 짤막한 노래에 맞춰 춤을 춰 보인, 아니 어정쩡하고 맥락 없는 율동을 해 보인, 그 공연은, 도대체 저게 무슨 의도인가, 도대체 한국의 어떤 문화를 보여주고자 함인가 내내 의문부호를 떠올릴 수밖에 없게 한, 실로 끔찍한 테러였습니다. 저것은 몇주, 심지어 몇달에 걸쳐 열심히 준비하고 연습했을 게 분명한 다른 나라 행사들에 모욕을 안겨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었습니다. 아 참 낯 뜨거운 자리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누가 절더러 어디 출신이냐고 물었다면 일본이나 중국이라고 대답했을 겁니다. 그 한국 부분만 돼지 꼬리 붙여 쏙 빼고 나면 (반드시 빼야 합니다), 정말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멋지고 독특한 문화 체험이었습니다.


2008년 5월20일 (화) - 빅토리아데이 긴 주말을 이용해 워싱턴D.C.에 다녀왔습니다. 그 도시는 그 쟈체로, 미국이 스스로 역사와 문화를 만들어 시위하고 홍보하는 거대한 기념관 같았습니다. 문제는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우리처럼 캐나다로 돌아가는 수많은 차들에 끼여, 국경을 지나는 데 거의 다섯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시속 1km. 끔찍했습니다. 특히 아이들에게 정말 못할 짓이다, 하는 생각, 미안함, 죄책감, 후회 같은 게 밀물처럼 몰려왔습니다. 진작에 다른 길로 우회하지 못한 게 또한 크나큰 실책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추석 귀성길에 겪었던 교통 체증이 자꾸만 떠올랐습니다. 다음에는 좀더 꼼꼼히 지도 연구를 해야겠습니다. 아침 9시반쯤 출발한 귀향길은, 자정이 거의 다 된 시각에 끝났습니다. 아이들은 벌써 다 잠들었고, 어른들도 탈진할 대로 탈진한 상태였습니다. 잊지 못한 여행이었습니다.


2008년 5월15일 (목) - 로봇이 클래식 음악 연주회를 지휘한다. 오늘 직장 동료한테 그 말을 듣고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들어가서 두 눈으로 확인하고는, 하, 참, 하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역시 일본인들은 참 다르다...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어쨌든 대단하지 않습니까? 지휘봉을 놀리는 솜씨가 여간 아닙니다. 부드럽고 우아하고...게다가 뒤에 공손하게 인사하는 품이라니... 다시 한 번, 역시 일본이다, 감탄했습니다.


2008년 5월12일 (월) - 요즘 자주 듣는 음악이 말러입니다. 5월초, 좋아하는 지휘자가 말러 1번을 연주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한 번 가볼까?'즉흥적으로 가게 된 곳이 바로 시카고였습니다. 음반으로만 듣던 말러, 하이팅크, 그리고 시카고 심포니... 연주회는 참 좋았습니다. 그러나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근 열시간을 달려 다다른 시카고는,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콘크리트 빌딩 숲도 개성적이고 매력적일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도심 공원이 어느 정도까지 인간 친화적이고 포용적일 수 있는지를, 시카고는 모범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음식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다만, 오고 가는 길이 너무 멀고 고단했습니다. 오는 길에는 방향을 착각해 반대 방향으로 한 시간 이상 내닫는 바람에 더욱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다 꿈만 같습니다. 


2008년 5월9일 (금) - 어제 동준이가 난생 처음으로 500m 경주 대회에 출전했습니다. 토론토 지역 가톨릭스쿨보드가 주최한 12개 학교 체육대회중 하나인 'Special Olympics'이었습니다. 출전선수당 두세 명의 조력자, 부모가 붙어 선수보다 '코칭 스탭'이 더 많은 이 이상한 대회에서, 동준이는 꼴찌를 했습니다. 하지만 엄마 아빠 눈에는 그 꼴찌도 대견했습니다. 뛰다, 서다, 거꾸로 가다, 초콜렛 달라고 보채다, 하면서도, 결국 완주를 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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