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ETINGS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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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숭숭-하다
① 일이나 물건이 갈피를 잡을 수 없이 흩어지고 얽혀 있다. ¶ 꿈자리가 ~.
② 느낌이나 마음이 어수선하고 불안하다.

요즘의 제 마음을 적절히 표현하는 말입니다. 다음 주 화요일이면 이곳으로부터 거의 4천km나 떨어진 에드먼튼으로 떠나야 하는데, 집안의 근심이 해소되지 않으니 그저 뒤숭숭할 뿐입니다. 이미 가겠다고 했으니 가긴 가는데, 그 발길을 무겁게 하는 일이 한둘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아빠 껌딱지'인 성준이가 지난 며칠 동안 끙끙 앓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콧물만 흘러 그간 간간이 걸리곤 하던 감기인가보다 했는데, 지난 일요일 저녁부터는 계속 기침을 해대면서 밤새 잠을 설치더니, 월요일을 지나 화요일 밤으로 가는 지금까지 가래 기침에 천식에 걸린 듯한 숨소리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어제 찾아간 소아과에서는 귀나 목구멍, 폐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 일단 그냥 두고 보는 게 낫겠다고 했지만, 상황은 도리어 악화되는 듯합니다.

또 한가지 걸리는 것은 동준이입니다. 밤이면 밤마다 잠을 안자겠다고 예의 기성(奇聲)으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울어댑니다. 듣다 듣다 못해 방에 들어가 울지 마라, 배고프냐, 원하는 게 뭐냐고 물어도 그냥 노노에 굿나잇만 외치다가, 다시 불 끄고 문 닫고 나가면 또 그 울음입니다. 그래서는 안된다 하면서도 종종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오르곤 합니다. 제가 가고 나면 제 엄마 혼자 그 둘을 감당해야 할 텐데, 과연 그게 잘 될지, 아내는 혼자서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고 힘들어할지, 저로서는 여간 걱정스럽고 미안하고 불안하지 않습니다.

그밖에도 에드먼튼으로 이주하면서 토론토의 집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과연 에드먼튼에서 동준이한테 꼭 맞는 좋은 특수 교육 여건을 마련해줄 수 있을 것인지, 동준이 자신은 과연 또다시 새롭고 낯선 곳에서 잘 적응 할 수 있을 것인지, 이런저런 고민거리가 꼬리를 잇지만 일단 동준-성준, 그리고 아내에 대한 걱정에 견주면 아직은 다 부차적인 문제로만 비칩니다. 내일 밴쿠버에서 동준이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께서 오십니다. 제가 에드먼튼으로 가고 난 공백을 한 달 남짓이나마 메꾸고 도와주실 요량인데, 저로서는 고마우면서도 송구스럽습니다.

사는 게 뭔지... 하는 말이 새삼 입가를 맴도는 요즘입니다. (2009-01-13-화)


오늘 장기휴직 (무급) 신청을 끝냈습니다. 오는 3월2일부터 1년간 휴직입니다. 에드먼튼에 가는 것은 1월20일이지만 그간 쓰지 않고 모아둔 휴가일수가 한달 가까이 돼서, 휴직 개시일을 3월 초까지 미룰 수 있었습니다. 이로써, 적어도 내년 3월1일까지는 온타리오주정부 공무원 보직을 유지하게 됩니다. 앨버타주에서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데 따른 일종의 보험인 셈인데, 저로서는 1년 뒤에 다시 돌아와야 하는 상황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에드먼튼으로 간다는 소식이 사내에 퍼진 이후 온갖 덕담, 악담, 추정, 낭설, 농담, 과장 따위를 약간은 지겹다,라고 생각할 만큼 숱하게 들어 왔습니다. "그 추운데로 왜 가느냐?"로부터, "축하한다, 이렇게 경제난이 심각할 때 가장 안정적인 주로 이주하는 게 부럽다", "에드먼튼의 여름은 채 한 달도 안된다", "에드먼튼에서는 한여름에 자정이 되어서도 야외 바베큐 파티를 할 수 있다", "에드먼튼 날씨는 기온이 낮기는 하지만 바람이 불지 않고 습하지 않아 생각만큼 춥지 않다", "에드먼튼에는 볕드는 날이 많아 춥더라도 지낼 만하다" 등등.

옛날, 10년도 더 전에, 혼자 노르웨이의 베르겐에 놀러간 적이 있습니다. 늘 동경해 오던 베르겐 페스티벌을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때 주위에서 한 말은 하나같이 "도대체 그런 데를 왜 가느냐?"는 것이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렇게 묻는 사람들 중 단 한 사람도 노르웨이에 가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여행의 추억을 지금도 가장 아름답고 인상적인 것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아내랑 함께 또 가보리라 생각한 게 한두번이 아닙니다.

에드먼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흥미롭게도, 에드먼튼에 대해 '겁나게 춥다'라거나 '얼음지옥'이라고까지 말하는 이들은 대체로 에드먼튼에 가본 적조차 없거나, 가보았더라도 한 이틀 묵고 온 게 고작인 사람들입니다. 에드먼튼에서 살았던 이들, 일했던 이들은 하나같이 "정말 좋다"라고들 말합니다. 어느 쪽을 믿어야 할지 아직도 선뜻 판단이 서지 않지만, 그럼에도 저는 노르웨이 여행의 경우처럼, 에드먼튼행에 대해 스스로 "잘했다"라고 결론지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09-01-08-T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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